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몽실 언니 (문단 편집) === 새어머니와의 만남 === 몽실이와 정씨는 노루실이라는 마을에 정착해서 살아갔다. 정씨가 몽실이의 고모의 소개로 새로 얻은 아내이자 몽실이의 [[새어머니]]인 북촌댁은 마음씨 착한 [[미인]]으로 몽실이에게 친어머니처럼 잘 대해준다. 초기에는 어색해하던 몽실이는 그녀의 진심을 느끼고 [[결핵]]으로 인해 전 남편에게 버림받은 슬픈 과거를 들으면서 점점 마음을 열고 그녀를 또다른 어머니로 인정한다. 이 모녀가 친해질 때 즈음 북촌댁이 [[임신]]을 하고, 산달이 가까울 무렵 [[6.25 전쟁]]이 발발하면서 정씨는 전쟁터로 끌려가게 된다. 남편도 없이 북촌댁은 힘들게 몽실이의 여동생을 낳는데, 몸이 원래 약했던 데다 [[영양실조|제대로 먹지도 못했던]] 그녀는 몽실이에게 아기를 부탁한 뒤 세상을 떠난다. 몽실이 가족을 돌봐주던 이웃집 장골 할머니가 '난리통에 태어난 아이'라는 뜻으로 이름을 난남이라고 지어주었고, 쌀을 씹어 가루를 만든 뒤 암죽을 끓여 먹이는 방법을 가르쳐 주었다. 몽실이는 부모도 없이 옆집 할머니의 도움으로 암죽을 먹여가며 [[소년소녀가장|난남이를 보살폈다.]] 부모님도 먹을 것도 없는 몽실이는 살 길이 막막해지자 난남이를 업고 고모를 찾아갔지만 고모댁 마을이 전쟁통에 폭격을 당해 고모도 불에 타 죽은 후였다. 몽실은 결국 다시 댓골의 밀양댁을 찾아간다. 때마침 새아버지였던 김 주사도 참전 중이었고 새할머니도 돌아가신 뒤여서[* 병으로 쓰러져서 거동도 못 하게 되어, 병 수발 드는 밀양댁에게 고생만 잔뜩 시킨 채 죽었다고 한다. 댓골에서 만난 친구 순덕이 소식을 전해 주면서 천벌 받은 거라고 뒷담을 깠다. 마음씨 나쁜 노인이라 평판이 나빴던 듯.] 몽실은 한동안은 영득이 이후 새로 영순이를 낳은 밀양댁과 마음 편하게 산다.[* 하지만 그런 한편으로 전 남편이 재혼하여 낳은 딸 난남이에 대해 복잡한 심정과 태도를 드러내는 어머니 때문에 눈치를 봤다.] 하지만 1년 뒤 김 주사가 귀향하면서 불안한 동거가 시작되었고, 난남이가 김 주사의 밥상다리를 넘어뜨리자 김 주사가 난남이를 걷어찬 사건을 계기로 밀양댁이 몰래 쌀 한 말을 판 돈을 받아 다시 노루실로 돌아왔다. 노루실의 이웃 [[할머니]]의 소개로 몽실이는 구둣방을 운영하는 마음씨 착한 가정의 [[식모]]로 일하며 난남이와 그 집에서 안정된 생활을 한다. 하지만 얼마 후 전쟁포로로 붙잡혔다가 탈출한 친아버지 정씨의 귀향으로 몽실이는 다시 난남이와 노루실로 돌아가게 된다. 아버지 정씨는 전쟁 중 입은 부상으로 한쪽 다리를 못 쓰게 되어 아무 일도 하지 못하는 상황.[* 송환된 것이 아니라 포로로 잡혔다가 탈출한 것이기 때문에 나라에서 보상을 받을 길이 없었다. 다만 전쟁에 대한 참전군인들에 대한 지원이 제도적으로 이루어진 것은 1961년 [[국가보훈처]]의 전신인 군사원호청 시절이었다는 점은 알아두자.] 이에 몽실이는 마음을 굳게 먹고 [[소녀가장]]이 되어 [[깡통]]을 들고 이 집 저 집 돌아다니며 [[구걸]]한 밥으로 아버지와 난남이를 먹여 살린다. 가족을 위해 창피함도 무릅쓰고 거지가 된 것이다. 정씨는 몽실이가 구걸을 하겠다고 깡통 손잡이를 만들어달라고 하자 [[화냥년]]의 딸은 어쩔 수 없다고 폭행까지 했지만.[* 물론 아무 일도 못하는 나머지 딸을 비참한 신세로 만들고 만 자신에 대한 자괴감 때문이었을 것이다. 하지만 본인의 자괴감을 딸에게 폭력으로 푼 것은 엄연한 아동 학대.]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